Hundertwasser

모든 사람들은 창문에 대한 권리를 가집니다. 모든 사람들은 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자신의 세번째 피부, 팔을 뻗어 닿는데까지 집의 창문과 외벽을 재창조하고 모양을 바꿀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수감된 이웃과 자신을 구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저 곳에는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  훈데르트바서, 1958


훈데르트바서는 1958년 7월 4일 발표한 성명서 '건축에서 이성주의에 반하는 정책을 만들자' 를 발표하며, 건물 세입자들에게 '집에서 창문 밖으로 팔을 뻗어 닿는 만큼 창문과 주변의 외벽을 바꿀 자유' 를 줘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훈데르트바서는 창문은 집의 눈과 동일하며, 창문들이 제각각 춤을 출 수 있어야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훈데르트바서는 자신의 모든 건축물에 창문 디자인을 제각각 다르게 하였으며, 오늘날에도 비엔나의 시영아파트 훈데르트바서하우스는 임대차계약서에 훈데르트바서의 창문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창문에 대한 권리 - 나무에 대한 의무


오염된 공기와 부족한 산소 때문에 우리는 도시에서 숨이 막힌채 살아갑니다.
식물은 우리에게 숨과 생명을 줍니다. -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죽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회색의 척박한 건물 전면을 지나가고, 우리의 집들이 감옥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들 각자가 행동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환경의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허가나 권한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의 옷과 방뿐만 아니라 당신이 살고 있는 건물의 외관도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창조물이던 이 무익한 죽음보다 낫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집에서 창문 밖으로 팔을 뻗어 닿는만큼 창문과 주변의 외벽을 바꿀 권리가 있습니다.

창문에 대한 이 권리에 반하거나 이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규정은 무시되어야 합니다.

주택은 인간의 권리입니다.

자라나는 초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신의 의무입니다.

모든 수평의 것은 자연에 속하며, 수직의 것은 인간에게 속합니다.

겨울에 하얀 것은 여름에 녹색이어야 합니다. 비에 젖는 모든 것, 하늘 아래 지평선에 있는 모든 것은 식물의 생명 영역에 속합니다.

나무는 거리와 지붕에서 자라야 합니다. 도시에서 다시 삼림지대의 공기를 마실 수 있어야합니다.

인간과 나무 사이의 관계는 종교적인 차원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직선은 신의 부재이며 비도덕적입니다.


─ in Düsseldorf on the occasion of the TV-broadcast “Wünsch dir was” (Make a Wish) 
훈데르트바서,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