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싸개 소년과 고층건물
PISSING BOY WITH SKY-SCRAPER
1952
280 cm x 140 cm
Wool │ 양모
1952년 비엔나에서 작업한 이 태피스트리는 내기가 아니었다면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직조공인 리들과 쉬들로는 밑그림이나 간단한 스케치가 있어야만 태피스트리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내 의견은 그런 것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었고, 내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그들은 나에게 베틀을 빌려주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직접 집으로 끌고 갔는데, 수레에 실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직조공이 내가 베틀을 세우는 것을 도왔고, 나에게 다양한 색조의 유색 양모실을 빌려준 다음 나는 직물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끝없는지 보고 놀랐습니다. 하루에 몇 mm씩만 자라났습니다. 나는 항상 빗으로 양털을 날실 안으로 밀어 넣어야했고, 그렇게 하고나면 5cm의 양털이 1~2mm가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천천히 위쪽으로 태피스트리를 작업했고,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손과 발로 일하면서 6개월이 걸렸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오랜시간동안 일한 적이 없었습니다. 소년의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바짓단이 되었고 그 오른쪽에는 집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배경을 채울 것과 상단을 위해 무엇을 할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바짓단에서 시작된 작업은 몸이 되었고 팔과 머리가 되었습니다. 배경에는 창문이 있어야하고, 창문을 만들면 그 위에는 지붕이 있어야했는데, 이것이 내가 태피스트리를 완성하고 내기를 이긴 방법이었습니다. 같은 방에서 몇개월간 혼자서 이렇게 작업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겨울에 시작해서, 겨울이 봄이 되고 여름이 되었고, 작업은 mm 단위로만 진행되었습니다. 나는 오른발과 왼발, 오른손과 왼손 사지 모두를 이용해서 작업했습니다. 네 개의 손으로 일하는 원숭이 같은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 훈데르트바서 (Cat. Barbican Art Gallery, London, 1983, pp. 344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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